< back
하제

하제

title<목적>
books1
price10,000키링옵션 +5,000

작가의 대표 글

-숨을 쉰다.저 끔찍한 인간이 숨을 쉬며 나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도시, 심지어 같은 건물 같은 방 안에 있다. 그리고 난 저 사람을 살렸다. 그가 쇼크로 처음 우리 병원 응급실로 왔을 때, 내가 직접 다시 심장을 뛰게 하였고 손수 바드를 달아 주었다. 그때 내 손을 올려 칼로 저 몸을 가를 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주 묘하고 더러운 감정을 느꼈다. 이뤄낸 것을 지키기보다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라면 이용학이라는 정치인을 좋게 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혐오하는 국민 가운데 누구도 나만큼 직접적인 피해를 본 사람은 없다. 아버지가 죽은 건 결국 그 사람 때문이니까.그 이전에 아버지가 정계를 불명예스럽게 떠난 것, 수많은 오해와 거짓 비판, 자극적인 기사에 휘말려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낸 것, 사람들이 내가 성취한 모든 것에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내 모든 경력과 그동안의 노력이 사라질 뻔한 것 모두가 이용학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물론 저 사람만을 탓할 수는 없다. 오랜만에 자극적인 주제를 찾아서 조회 수 높이기에 급급한 언론사들, 그리고 그런 과장된 추측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국민도 아버지를 무너뜨리는 일에 큰 지분을 차지한다. 나와 아버지의 사이는 그렇게 돈독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어려운 사람이었고 솔직히 벗어나고 싶은 그늘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 때문에 모두 나를 국회의원 아들로 알고 있으니 항상 내가 노력하는 만큼 인정받지 못했고 사람들은 내가 국회의원 아들이니까 내가 이뤄낸 모든 것을 당연시했다. 그래도 원칙과 정의, 타인의 행복을 위해 진정으로 고민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기에 원망보단 존경심이 조금 더 컸다. 병원에서 일하다 돌아가셨단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그곳에선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었다. 아버지의 삶은 그 정도로 무너졌었다. 아버지를 잃은 것 외에도 난 내 능력에 대한 의심을 꾸준히 받았고 수많은 거짓 뉴스에 시달렸다. 그 사건 이후, 많은 사람들이 날 떠나갔고, 난 붙잡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정말 많은 것들을 잃었다. 그리고 당분간 내 일은 저 사람이 생명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병원 사람들은 내 눈치를 봤다. 난 그 사람이 이 병원에서 받은 첫 수술을 주도했으며, 내 환자였다. 이 사실에 대해서 사람들은 연민 혹은 불신이 가득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내가 애써 억누르고 있는, 내 환자에게 쌓인 사적인 감정들을 자극했다.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감정을 숨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하지만 나름 의대 졸업했다는 인간들, 특히 교수라는 것들이 이런 건 전혀 모르는 눈치다.요즘은 병원에 있는 모든 시간이 고역이다. 수술은 늘어가고 쉴 시간은 줄어든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여야만 한다. 이제 누가 ‘최지민 선생’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내가 이러려고 그 고생해서 의사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예전 같았으면 다른 동료들하고 같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소소한 재밋거리들을 찾았을 건데 그 사건 이후 나는 그들을 그들도 나를 불편해하고 부담스럽게 여긴다. 서로 웃으며 인사하고 필요한 대화는 자연스럽게 하지만 그 외적인 시간에는 서로를 찾지 않는다. 난 그저 언젠가는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만 있을 뿐 다른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것까지 고민할 여유가 없다.“최지민 선생, 잠깐 따라와. 별일은 아니고 그냥 오랜만에 이야기나 좀 하려고.”별일 아니면 좀 쉬게 내버려 두지.이용학 열혈 팬, 흉부외과 김교수가 소중한 휴식 시간에 날 부른다. 지금까지 이 병원에 있으면서 아직 사고도 친 적 없고, 동기들보다 빠르게 배우는 편이라 내가 평범한 의사였으면 교수들이 날 안 좋게 볼 이유는 딱히 없다. 그렇지만 특히 교수들은 이용학을 좋아한다. 쉽게 정리하자면 우린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관계다. 대화를 나눠 좋을 게 없다.“최선생, 의원님은 괜찮으시지?”진짜 이러긴가.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웃으며 사실 그대로 내 환자의 건강 상태를 전달했다. 그랬더니 그는 작위적으로 웃으며 고생이 많다고 했지만, 그 말에는 조금의 진심도 감정도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요새 수술도 많고 또 까다로운 환자도 들어와서 힘든 거 잘 알고 있네. 그래도 최선생은 늘 잘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보자고.”“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뻔한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다.“다음 주에 흉부외과 회식 한 번 하지. 요즘 다들 지치고 풀이 죽은 것 같아. 맛있는 거 먹으면서 재충전하자고. 다른 친구들은 몰라도 최선생은 꼭 내가 데리고 가야겠어.”정말 가기 싫었다. 불편한 사람들과 내 시간을 써가며 술을 마셔야 한다. 하지만 역시나 거절하지 못했고 난 그저 다음 주에 독한 감기에 걸리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깔끔하게 휴식 시간을 날려 먹고 환자들 상태를 체크한 후, 당직실로 가서 소파에 드러누웠다. 핸드폰을 꺼냈는데 민주가 3시간 전에 카톡을 했다. 열어보니 오늘 오랜만에 시간이 여유로운데 만날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왜 하필 당직인 날에...’안 만난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서로 휴대폰을 끼고 살던 대학 시절과 다르게 지금 우리는 각자의 일로 바빠 서로를 응원하는 형식적인 문자만을 보낸다. 민주와 사귀기 시작한 건 우리가 대학교 3학년이었을 때지만, 난 복학을 해서 나이는 내가 2살 더 많았다. 처음 민주를 만난 건 복학한 직후에 진행한 봉사활동에서였다. 처음엔 그저 말투에 묻어있는 경상도 사투리가 조금 귀엽고 아는 게 정말 많다고 느껴진 여자 후배였다. 그렇게 우린 친해졌고 몇 달 정도는 아무 감정 없이 지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민주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였고 내가 용기를 냈다. 사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이성을 좋아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딱히 좋아할 만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민주와 가까워지며 난 내 시간과 에너지를 그 애에게 쓰고 싶었다. 민주는 늘 밝은 분위기로 날 행복하게 만들었고 난 그 사실에 감사하며 관계에 최선을 다했다. 우린 정말 예쁘게 만났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이후, 민주의 웃음을 보기 어려워졌다. 난 바로 병원에서 일했지만, 민주는 계속해서 변호사 시험에 떨어졌다. 좁은 한 칸짜리 방에서 지내고 생활비를 직접 벌어가며 공부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민주라면 내 도움을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도 점점 바빠졌고 그렇게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으며 서로에게 어떤 상처도 주지 않은 우리 사이에 무엇인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 맥주 2캔이면 취하는 민주가 나보고 먼저 포장마차에서 보자고 하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소주 반병도 마시기 전에 취해버렸고 그때 그 이야기를 꺼냈다.“여친이 너무 못나서 미안, 잘나가는 오빠 인생에 내가 유일한 오점인 것 같아.”그 말을 듣고 나는 온몸이 굳었다. 난 민주에게 무리한 것 같다며 급하게 집에 데려다주었다. 집에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한 이후에 나는 집으로 돌아가며 펑펑 울었다. 그러고 우리 사이엔 한 달 가까이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우린 다시 만났지만, 예전 같지 않았다.

하제 작가의 말

하제 작가의 말안녕하세요. 하제 작가입니다.

Another